공개상담실
서울행정법원 2021. 9. 16. 선고 2020구합68363 판결 [유족급여및장의비부지급처분취소]
1. 처분의 경위
가. 망 C(1961. *. **.생 남자, 이하 ‘망인’이라고 한다)는 일반산업용 기계장치를 제조하는 업체인 주식회사 E(이하 ‘이 사건 사업장’이라고 한다)에 2018. 1. 8. 입사하여 용접 업무를 수행하였다.
나. 망인은 용접 작업을 하던 중인 2018. 1. 11. 17:20경 동료에게 “몸 상태가 좋지 않아 퇴근을 하고 싶다”고 말하고는 작업장에서 나가다가 돌연 쓰러졌고, F병원으로 후송되어 2018. 1. 12. ‘상세불명의 뇌내출혈’(이하 ‘이 사건 상병’이라고 한다)‘ 진단을 받았으며, 자택 인근의 R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2018. 1. 16. 13:25경 ’다발성 장기 부전‘으로 사망하였다.
다. 망인의 사실혼 배우자인 원고는 망인의 사망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며 2018. 3. 14. 피고에게 유족급여 및 장의비 지급을 청구하였으나, 피고는 “망인의 사망은 업무상 질병으로 인한 것이라 인정되지 않는다.”는 부산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의 심의 결과 및 관련 법령의 내용을 근거로 들어 2019. 1. 17. 원고에게 유족급여 및 장의비 지급을 거부하는 처분(이하 ‘이 사건 처분’이라고 한다)을 내렸다.
라. 원고는 이 사건 처분에 불복하여 피고에게 심사청구를 하였으나, 피고는 2019. 7. 8. 위 심사청구를 기각하였고, 이에 원고는 2019. 10. 7. 산업재해보상보험재심사위 원회에 재심사청구를 하였으나, 위 재심사청구도 2020. 3. 30. 기각되었다.
[인정근거] 다툼 없는 사실, 갑 제1 내지 9호증의 각 기재, 변론 전체의 취지
2. 이 사건 처분의 적법 여부
가. 관련 법리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5조 제1호 소정의 업무상 재해라고 함은 근로자의 업무수행 중 그 업무에 기인하여 발생한 질병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업무와 질병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어야 하고, 이 경우 근로자의 업무와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에 관하여는 이를 주장하는 측에서 입증하여야 하지만, ① 질병의 주된 발생 원인이 업무수행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더라도 적어도 업무상의 과로나 스트레스가 질병의 주된 발생 원인에 겹쳐서 질병을 유발 또는 악화시켰다면 그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고, ② 그 인과관계는 반드시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입증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며 제반 사정을 고려할 때 업무와 질병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추단되는 경우에도 입증이 되었다고 보아야 하고, ③ 또한 평소에 정상적인 근무가 가능한 기초질병이나 기존질병이 직무의 과중 등이 원인이 되어 자연적인 진행속도 이상으로 급격하게 악화된 때에도 그 입증이 된 경우에 포함되는 것이며, ④ 업무와 질병과의 인과관계의 유무는 보통평균인이 아니라 당해 근로자의 건강과 신체조건을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07. 4. 12. 선고 2006두4912 판결 등 참조).
나. 판 단
앞서 인정한 사실에 변론 전체의 취지를 보태어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들을 종합하면, 이 사건 사업장에서 망인이 수행한 업무와 망인의 사망 원인이 된 이 사건 상병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추단함이 상당하다.
1)「뇌혈관 질병 또는 심장 질병 및 근골격계 질병의 업무상 질병 인정 여부 결정에 필요한 사항(고용노동부고시 제2017-117호)」(이하 ‘이 사건 고시’라고 한다) Ⅰ. 1. 나목 전문은 ‘발병 전 12주 동안’의 업무량 등을 발병 전 1주일 이내의 업무량 등과 비교하여 업무상 과로 여부를 판단하도록 정하고 있다. 위 규정을 그대로 적용하면, 근로자의 발병 전 근로기간이 12주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에는 업무상 과로를 인정할 여지가 없게 된다.
그러나 ①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34조 제3항 [별표3]은 업무상 질병에 해당하는 경우를 예시적으로 규정한 것에 그치므로, 위 규정의 위임에 따라 세부 기준을 정한 이 사건 고시도 대외적으로 국민과 법원을 구속하는 효력이 없는 예시규정으로 보아야 하는 점(대법원 2020. 12. 24. 선고 2020두39297 판결 참조), ② 피고가 이 사건 고시의 구체적인 적용을 위하여 마련한 내부 지침인 「뇌혈관질병·심장질병 업무상 질병 조사 및 판정 지침(근로복지공단 지침 제2018-02호)」(이하 ‘이 사건 지침’이라고 한다)에서도 ‘만약 해당 업무 종사기간이 짧아 12주를 평가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산정 가능한 기간을 기준으로 발생 전 1주와 발생 전 2주부터 산정 가능 기간까지를 비교하여 평가’라고 규정함으로써, 발병 전 근로기간이 12주에 미달하는 경우에도 업무상 과로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을 두고 있는 점 등을 감안하면, 망인의 발병 전 근로기간이 12주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4일에 불과하다고 하더라도, 곧바로 망인의 업무상 과로를 부정할 수는 없다.
2) 이 사건 고시는 뇌혈관 질병에 유해한 작업환경의 대표적인 예로 ‘한랭 노출’ 을 들고 있다.
망인은 한겨울인 1월경에 이 사건 사업장에서 근무하였는바, ① 그 무렵 이 사건 사업장의 소재지인 경남 사천의 기온은 0 ~ 5도로 상당히 낮았던 점, ② 이 사건 사업장은 천장이 개방된 형태였으므로 외부 기온의 영향을 차단하기 어려웠던 점, ③ 이 사건 사업장은 바람이 많고 습도가 높은 바닷가에 위치하여 있어서 체감온도는 한층 낮았을 것이라 보이는 점 등을 고려하면, 당시 망인이 방한복을 입은 상태로 작업을 하였고 매일 식사시간에 더하여 20분의 휴게시간이 별도로 주어졌더라도, 기본적으로 한랭에 노출되는 환경에서 업무를 수행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3) 이 사건 지침도 ‘한겨울 추위에 노출되는 작업으로의 변화’를 ‘업무 환경이 적응하기 어려운 정도로 바뀐 경우’의 예시로 들면서, 근로자가 이러한 변화의 적응에 필요한 기간을 거쳤는지 여부를 고려하도록 정하고 있다. 추위에 적응하기 위하여 필요한 기간이 어느 정도인지 판단할 획일적인 기준은 없다고 보이나, 이 사건 지침은 참고할 만한 기준으로 고온 환경에 대한 적응기간(고온순화 기간)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에 따르면 고온 환경에 대한 적응은 노출 후 4 ~ 7일부터 시작되어 12 ~ 14일에 비로소 완성된다는 것인바, 그 대척점에 서 있는 저온 환경에 대한 적응에도 상당한 시일이 소요된다고 추정해볼 수 있다. 그런데 망인은 여름인 2017. 8. 31.부터 줄곧 실직 상태에 있다가 한겨울인 2018. 1. 8. 업무를 재개한 것이므로, 그동안 망인이 한겨울 추위의 적응에 필요한 준비기간을 가졌다고 보기 어렵다. 그렇다면 망인은 이 사건 사업장에서 업무를 시작함과 동시에 적응하기 어려운 업무 환경에 갑작스럽게 직면하였던 것으로 볼 수 있다.
4) 망인이 발병 전까지 이 사건 사업장에서 근로한 시간은 40시간 정도이므로, 이 사건에서 망인이 추위에 노출된 시간 자체가 절대적으로 적었다고 볼 여지도 있다. 그러나 이 사건 고시는 ‘증상 발생 전 24시간 이내에 업무와 관련된 돌발적이고 예측 곤란한 사건의 발생과 급격한 업무 환경의 변화로 뇌혈관 또는 심장혈관의 병변 등이 그 자연경과를 넘어 급격하고 뚜렷하게 악화된 경우’에도 업무상 질병을 인정하고 있고, 이 사건 지침은 그 예시로 ‘폭염 환경에서 옥외 작업을 수행한 경우 등 비일상적 육체활동을 수행한 경우’를 들고 있다. 이처럼 이 사건 고시 및 지침이 ‘근로자가 온도가 급격하게 변화된 환경에서 업무를 수행하였다면 업무 개시 후 24시간 이내에 뇌혈관 질환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전제에 서 있는 점, 앞서 살핀 바와 같이 망인이 추위에 관한 별다른 적응기간 없이 이 사건 사업장의 업무에 투입된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총 40시간에 달하는 망인의 근로시간이 이 사건 상병을 일으키기에 부족하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5) 서울특별시 S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는 망인의 용접 작업이 ‘육체활동의 강도가 심한 업무’에도 해당한다고 평가하고 있다. 또한 망인은 이 사건 상병이 발병한 당일 오전에 자신이 전날 수행한 작업에서 불량이 발생하였다는 사실을 통보받았다. 비록 이 사건 사업장 측에서 망인을 적극적으로 질책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이나, 한편으로 ① 망인은 수개월간 실직 상태에 있다가 이 사건 사업장에 취직한 것인 점, ② 당시는 작업 물량이 많이 밀려있었기 때문에 신속하고도 정확한 업무 처리가 요구되는 상황이었는데, 망인은 2년 3개월간 용접 업무에 종사한 경력을 보유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 사업장에 입사한 지 3일 만에 실책을 범한 것인 점, ③ 망인이 위 작업 불량 사실을 통보받은 시점으로부터 10시간이 채 지나지 아니하여 이 사건 상병을 일으킨 점 등을 아울러 감안하면, 망인이 자신의 업무상 실책에 대하여 심리적인 부담을 느끼지 않았다거나, 그러한 심리적 부담이 이 사건 상병과는 무관하다고 단정할 수 없다. 따라서 이 사건 사업장의 한랭한 유해환경에 더하여 용접 작업 자체의 심한 업무 강도 및 작업 실수에 따른 정신적 스트레스가 이 사건 상병의 복합적인 원인으로 작용하였을 가능성도 상당하다고 보인다.
6) 망인이 고혈압, 당뇨, 비만, 고지혈증, 음주 이력 등 이 사건 상병과 관련된 기저 질환이나 개인적인 위험인자를 보유하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① 일반적으로 뇌혈관 병변의 발병과 가장 연관이 깊은 기저 질환은 고혈압으로 보이는데, 망인의 혈압은 2016. 6. 14. 현재 124/82mmHg으로 기준치(120/80mmHg 미만)를 크게 초과하지 않는데다, 그 뒤로 이 사건 상병의 발생 시점에 비교적 근접한 2017. 12. 25.까지 고혈압 치료를 꾸준히 받아온 점, ② 망인은 2016. 6. 14.자 건강검진 결과에서 공복혈당이 당뇨 수준으로 높게 나오자, 2017. 5. 1. ~ 2017. 7. 10. 당뇨병 진료를 받은 점, ③ 망인의 체질량 지수는 27 정도로 경도 비만(체질량 지수 25 ~ 30) 수준에 머무른 것으로 보이는 점, ④ 망인이 30여 년간 지속적으로 음주를 하였으나 그 빈도는 주 1회, 주량은 소주 반 병을 넘기지 아니한 점, ⑤ 한편 망인이 흡연은 전혀 하지 아니한 점 등에 비추어 보면, 망인은 개인적인 위험인자를 상당 부분 조절·관리하고 있었다고 보인다. 그렇다면 망인의 중성지방 수치가 상대적으로 높은 점을 보태어 보더라도, 이 사건 사업장에 입사할 무렵 망인의 건강 상태가 앞으로 3 ~ 4일 만에 이 사건 상병이 자연적으로 발생할 만큼 악화되어 있었다고는 보기 어렵다. 따라서 망인의 건강 상태에 더하여 망인의 업무가 공동으로 이 사건 상병의 발병 또는 악화의 원인이 되었다고 추단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7) 서울특별시 S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 역시 망인의 업무와 이 사건 상병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긍정하는 의학적 소견을 제출하였다. 한편 이에 대하여 N병원 신경외과 전문의는 이 사건 상병의 원인은 어디까지나 망인의 고혈압으로 보아야 한다며 반대의 견해를 밝혔으나, 그 취지를 면밀히 살펴보면 망인의 업무는 이 사건 상병의 독립적인 유발 인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일 뿐, 나아가 망인의 업무가 고혈압을 악화시켜 이 사건 상병의 발병에 기여하였을 가능성마저 부인하는 것은 아니라고 보인다.
라. 소결론
이와 다른 전제에서 내린 이 사건 처분은 위법하므로 취소되어야 한다.
3. 결 론
원고의 청구는 이유 있으므로 이를 인용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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